정선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마음에 떠오르는 건 ‘길’입니다. 완만하거나 평평한 길이 아니라, 굽이치고 오르막이 많은 길. 그 길을 오르고 또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시야가 탁 트이는 풍경과 마주하게 됩니다. 정선의 여행은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오르면서 마음속 무게를 덜어내고, 그 끝에서 다시 나를 마주하게 되는 시간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오르막 끝에서 만난 정선의 풍경과 그곳에서 느꼈던 고요한 감정을 나눠봅니다.
조용한 아침,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하다
정선역에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이른 아침 기차에서 내리니 아직 마을은 조용했습니다. 산 아래 위치한 마을은 뿌연 아침 햇살에 잠겨 있었고, 사람들보다 먼저 깨어난 것은 산새들과 바람이었습니다. 가파른 골목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길옆의 오래된 주택들, 장작을 쌓아둔 창고, 그리고 골목을 굽이도는 고양이 한 마리. 모두가 무심한 듯 일상의 속도를 지키고 있었고, 나는 그 틈에서 여행자로서의 시간을 따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길은 예상보다 경사가 있었지만, 그 힘듦을 감추듯 풍경은 점점 더 확장되었습니다. 조금씩 발걸음이 익숙해질 무렵, 시멘트 포장이 끝나는 곳에서 흙길이 시작되었고, 나무 사이로 아침 햇살이 스며드는 모습은 그 자체로 조용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오르막 끝, 마주한 정선의 고요함
숨이 조금 가빠질 무렵, 길의 끝에서 넓은 언덕과 함께 정선의 전경이 펼쳐졌습니다. 아래로는 마을이 작게 내려다보이고, 멀리 능선 위로 흐르는 구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풍경은 소리 없이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왔고, 나는 그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너무도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풍경. 논과 밭이 겹겹이 이어지고, 그 너머로는 겸손하게 솟은 산들이 겹겹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서서 바람을 느끼며 나는 스스로의 호흡을 다시 찾고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보겠다고 서둘렀던 여행과는 다른, 그저 ‘멈춰 있음’ 그 자체로 충분한 시간. 사진을 찍기보다는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프레임에 담기에는 아까운, 오직 눈으로만 느껴야 할 풍경이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남은 잔상들
오르막을 내려올 때, 풍경은 같은 장소임에도 전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올라올 때는 느끼지 못했던 풀냄새, 나무 그림자, 먼 데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까지. 내려가는 길은 더 짧았지만, 더 많은 것을 남겼습니다. 걸음마다 마음이 가벼워지고, 오늘 하루가 조금은 더 단단하게 채워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을로 내려와 작은 국숫집에 들렀습니다. 구수한 국물에 국수가 풀리고, 그 따뜻한 온도가 아침의 고요함과 겹쳐졌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정선 아리랑 시장을 걷는 동안에도 아까의 풍경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시장의 활기 속에서조차, 오르막 끝의 고요함은 또렷이 살아 있었습니다.
정선은 어쩌면 그렇게 특별한 무언가를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 곳입니다. 오르막길 하나에도 삶의 결이 담겨 있고, 그 끝에 선 순간 마주하는 풍경은 말보다 더 깊은 울림을 줍니다. 이곳의 여행은 거창한 계획 없이도 충분합니다. 그저 길을 따라 걷고, 오르막을 넘고, 잠시 멈춰 서기만 해도 마음속에 잔잔한 여운이 스며듭니다. 정선에서 보낸 그 하루는, ‘힘들었지만 아름다웠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말은, 인생의 어느 시기를 돌아볼 때에도 꼭 닮은 문장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