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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파도가 수평선을 닮아가던 그 순간

by manostarb 2025. 6. 27.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과 푸른 바다가 맞닿은 조용한 어촌 마을. 맑고 투명한 바다 너머로는 완만한 언덕 모양의 섬이 멀리 떠 있으며, 방파제와 작은 부두가 아담하게 자리잡아 있다. 해안선을 따라 줄지어 있는 천막과 건물들은 마을의 소박한 삶의 흔적을 보여준다. 해안도로 옆으로는 야생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전체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삶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평화로운 풍경을 담은 사진.

 

도시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풍경이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 귓가를 가득 채우는 파도 소리, 바람을 따라 흐르는 구름의 그림자. 울릉도는 그런 장면을 품고 있었습니다. 도심의 복잡함을 잠시 잊고 섬이라는 고요한 공간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마음을 비우는 행위였고, 자연과 더 가까워지는 일이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울릉도의 바닷가에서, 수평선을 닮아가던 파도를 바라보며 보낸 조용한 순간의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파도와 바람으로 시작된 하루

울릉도에 도착한 첫날, 나는 짐을 풀기도 전에 곧장 바닷가로 향했습니다. 섬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더 조용했고,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했습니다. 포항에서 긴 배를 타고 도착한 몸은 조금 피곤했지만, 바닷바람은 그 모든 피로를 씻어내듯 다가왔습니다. 항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해안 산책로가 이어지고, 그곳에서는 바다와 마주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파도는 낮게 부서지며 리듬을 만들어냈고, 눈앞의 수평선은 고요하지만 단단한 선처럼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바람은 일정한 방향 없이 섬을 돌아 흘렀고, 풀잎과 사람의 머리카락, 길모퉁이의 깃발까지 모든 것을 유연하게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른 아침의 울릉도는 온전한 자연 그 자체였고, 나는 그 안에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수평선을 따라 흘러가는 감정들

울릉도에서의 시간은 시계보다 하늘의 색으로 측정됩니다. 해가 높이 떠오르면 빛이 바다를 파랗게 물들이고, 그 바다는 다시 파도를 만들어 낸 뒤 수평선에 안착합니다. 그 모습은 마치 바다가 수평선을 닮아가려 애쓰는 듯한 움직임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해안 절벽 위 벤치에 앉아 파도가 부서지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규칙적인 듯하지만 완전히 예측할 수 없는 그 움직임은, 삶의 리듬과도 비슷해 보였습니다. 어떤 파도는 낮게 흘러가고, 어떤 파도는 거칠게 부딪히다 금세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바다는 끊임없이 밀려오고, 수평선은 늘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동안, 내 안의 복잡한 생각들도 하나둘 씻겨나갔습니다. 이곳에서는 큰 결심도, 특별한 계획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순간에 집중하고, 눈앞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만이 중요했습니다. 마음이 가벼워지는 건 그런 단순한 시간 속에서였습니다.

저물어 가는 노을, 그리고 파도의 여운

저녁이 가까워질수록 울릉도의 바다는 색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파란빛은 주황과 분홍으로 물들고,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며 바다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때의 수평선은 더 이상 경계가 아니라 두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처럼 보였습니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도동항 근처까지 내려갔고, 작은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들고 다시 바다 앞에 섰습니다. 이제 파도는 낮보다 더 부드럽고, 더 깊은 소리로 다가왔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떠오른 생각들, 미뤄두었던 마음의 조각들,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들이 하나둘 파도에 섞여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했습니다. 그날의 울릉도는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풍경은 충분히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섬이라는 공간이 주는 거리감, 그리고 자연이 주는 일관된 위로는 말보다 더 깊이 마음에 스며드는 것이었습니다.

울릉도의 파도는 단지 바다의 움직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잊고 있던 고요와 자연스러움, 그리고 시간을 되찾게 해주는 하나의 감정이었습니다. 그 수평선을 바라보며 나는 조금 더 느긋해졌고, 조금 더 나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다시 이 섬을 찾게 된다면, 같은 바다를 보며 다른 감정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순간 울릉도는 나에게 '그냥 있어도 괜찮다'는 말을 조용히 건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