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해남 새벽 어시장, 고요한 활기가 느껴지던 공간

by manostarb 2025. 6. 28.

사진에는 수많은 생선—정확히는 정어리(sardine)로 추정되는—가 겹겹이 쌓여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은빛 비늘에 반사된 빛이 생선들의 신선함을 강조하고 있으며, 눈과 지느러미, 살짝 벌어진 입이 그대로 보이는 생생한 장면이다. 이 광경은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해산물의 생명력을 느끼게 하며, 수산시장이나 어촌의 활기찬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전체적으로 ‘자연 그대로의 풍요로움’과 ‘어업의 현장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미지다.

 

새벽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남쪽 끝, 해남. 그곳의 어시장은 해가 뜨기도 전에 하루를 시작합니다. 바다는 여전히 어두웠고, 하늘에는 별빛이 미세하게 남아 있었지만 시장은 이미 불빛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의 어시장은 시끌벅적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해남의 새벽 어시장은 ‘고요한 활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말보다 손으로 대화했고, 바다는 냄새로 하루를 알렸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해남 새벽 어시장에서 마주한 소리 없는 에너지, 그리고 그 안에서 느껴진 시간의 깊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어둠과 함께 깨어나는 시장

아직 도시의 불빛이 채 꺼지지 않은 시간, 해남의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어시장은 깊은 어둠 속에서 환한 형광등 불빛 아래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고, 하나둘 트럭이 들어오며 생선을 옮기고, 바구니를 정리하는 손길들이 이어졌습니다. 그 풍경은 요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아는 듯 조용히, 그러나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말이 적었습니다. 아마 이곳에선 매일 같은 시간, 같은 흐름으로 하루가 시작되기에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겠지요. 젖은 바닥 위로 부스럭거리는 장화 소리, 생선을 담은 고무 대야가 움직이며 내는 마찰음, 멀리서 들려오는 항구의 경적음만이 이 새벽의 소리였습니다. 그 속을 걷는 것만으로도 나는 한참 전에 잊고 지냈던 ‘진짜 하루의 시작’이라는 감정을 마주했습니다.

묵묵한 손끝에서 전해지던 리듬

한쪽 구석에서는 갓 잡은 생선을 손질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손끝에서 날렵하게 갈라지는 비늘 소리, 칼날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박자, 그리고 물 위에 닿는 살결의 소리까지. 그 모든 것이 하나의 리듬처럼 느껴졌습니다. 어시장은 ‘일하는 공간’이지만, 그 안에는 삶의 흐름과 감각이 정교하게 녹아 있었습니다. 생선을 쌓는 순서, 박스를 옮기는 발걸음, 계산서를 오가는 손짓 하나까지도 군더더기 없는 정확함이 있었습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지금껏 보아온 화려한 시장과는 전혀 다른 감정을 느꼈습니다. 해남 어시장은 사람들의 손이 말해주는 공간이었습니다. 각자의 역할을 말없이 해내고,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재촉하지 않는 흐름. 그 안에서 나도 모르게 숨을 천천히 고르게 되었고, 어깨에 힘이 빠졌습니다. 이 고요하고 꾸밈없는 시간 속에서 나는 바다와 가장 가까워졌습니다.

해가 떠오르는 순간, 비로소 완성된 풍경

동쪽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하자, 항구 너머의 수면에 미세한 빛이 스며들었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의 표정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고, 어시장은 하루의 중심으로 들어섰습니다. 해남의 새벽 어시장은 해가 뜨면서 완성됩니다. 어둠 속에서 분주하게 준비되던 물건들이 햇빛을 받으며 제 색을 되찾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조금은 가벼워졌습니다. 해가 뜨자 멀리서 시장을 찾는 손님들도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고, 이제 시장은 ‘풍경’이 아닌 ‘일상’으로 바뀌어갔습니다. 나는 어시장의 끝자락에 서서, 바다와 사람, 그리고 시간의 움직임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이곳에는 말보다 진한 감정이 있었고, 사진보다 더 깊게 남는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새벽을 함께 견딘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묵직한 온기. 그것이 해남 어시장이 가진 가장 큰 힘이었습니다.

해남 새벽 어시장에서 보낸 그 몇 시간은, 도시의 새벽과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말없이 흘러가는 시간, 조용한데도 활기가 느껴지는 풍경, 그리고 그 안에서 나 역시 조금은 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루의 시작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껴보고 싶다면, 꼭 한 번은 이곳의 새벽을 걸어보길 권하고 싶습니다. 해남의 바다는 그 새벽에 비로소 살아나고, 사람들의 손끝에서 삶이 다시 태어납니다. 그 고요한 활기는, 한참 뒤에도 문득 떠오르는 ‘감각의 기억’으로 오래도록 남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