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혼자였기에 더 자유로웠던 속초 바닷길 산책

by manostarb 2025. 6. 25.

두텁게 쌓인 눈더미 너머로 저녁 햇살이 수평선 위에 부드럽게 퍼지고 있다. 해는 아직 높이 떠 있지만, 주위는 이미 낮은 온도와 함께 고요한 정적에 감싸인 듯하다. 멀리 눈으로 뒤덮인 들판과 굽이치는 펜스는 겨울의 광활함을 강조하며, 태양빛에 반사되는 눈 표면은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사람의 인기척은 없지만, 기온 측정 장비나 경계용 구조물이 존재하며 이곳이 관리된 공간임을 드러낸다. 겨울 특유의 청량함과 고요함, 그리고 빛의 따스함이 묘하게 공존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

 

혼자라는 사실이 유독 가볍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누구에게 맞출 필요도, 계획에 쫓길 이유도 없이 오롯이 자신의 감정과 리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속초 바닷길을 따라 걸었던 하루가 그랬습니다. 여럿이 함께였다면 느끼지 못했을 소리와 향기, 그리고 하늘빛의 변화를 오롯이 나 혼자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기에 더 자유롭고 특별했던 기억입니다. 이 글에서는 혼자였기에 더 풍요로웠던 속초 바닷길 산책의 시간을 천천히 따라가 봅니다.

조용한 이른 아침, 파도 소리로 시작한 하루

숙소에서 나와 해변 쪽으로 걸어가는 길은 아직 사람들의 기척이 거의 없는 시간. 바다는 이미 깨어 있었고, 잔잔한 파도 소리는 나지막한 인사처럼 다가왔습니다. 동명항 근처에서부터 속초해변 방향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하면, 도시의 아침과는 전혀 다른 리듬이 느껴집니다. 바다 옆 산책길은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위를 걷는 기분은 마치 부드러운 바람 위를 걷는 듯 가볍습니다. 이따금 파도가 높게 부서지면 작은 물방울이 튀어 얼굴에 닿고, 그 순간마저 시원한 자극으로 다가옵니다. 해가 천천히 떠오르며 바닷빛이 조금씩 바뀌는 모습을 보며, 그 자리에서 한참을 멈춰 섰습니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아침, 바다와 하늘이 나를 향해 천천히 인사하는 것 같은 기분. 혼자 있었기에 더욱 귀하게 느껴졌던 장면이었습니다.

무심한 걸음 속에서 마주한 감정의 잔상

속초 바닷길은 단순한 풍경 그 이상을 줍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발걸음이 목적지를 잊고, 감정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게 됩니다. 바다를 등지고 난간에 기대 있거나, 모래 위에 홀로 앉아 있는 이들도 보입니다. 말없이 서로의 고요를 존중하며 지나가는 이 공간에서는 혼자인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중간중간 만나는 벤치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아보기도 하고, 소리 없이 들려오는 파도 소리를 귀에 담기도 했습니다. 길가에 핀 야생화 몇 송이,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 파도와 하늘 사이를 날던 갈매기 한 마리까지. 이런 사소한 장면들 하나하나가 마음속 깊이 새겨졌습니다. 누군가와 함께라면 지나쳤을 수도 있는 순간들을, 혼자였기에 더 예민하게, 더 깊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지요. 걸음의 속도가 느릴수록 더 많이 보고, 느끼고, 남기게 되는 산책. 그것이 속초 바닷길이 주는 묘한 매력이었습니다.

하루의 끝, 붉은 빛으로 물든 자유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바닷길은 또 다른 분위기로 물듭니다. 노을이 바다 위에 퍼지고, 바람은 한결 따뜻해지고, 길가의 가로등 불빛이 하나씩 켜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속초의 하루는 조용히 마무리되고, 나 역시 느린 걸음으로 숙소 쪽을 향해 돌아갑니다. 노을을 바라보며 그날을 되짚어보는 시간. 특별히 많은 곳을 간 것도 아니고, 누군가와 긴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었지만, 마음속은 오래 여행한 듯한 충만함으로 가득합니다. 혼자라는 사실이 고요함이 되고, 고요함은 감정의 풍경이 됩니다. 그렇게 속초의 바닷길은 단순한 산책로가 아닌, 나에게 귀한 자유의 공간이 되어주었습니다. 조용히 걷기만 했는데도 그 안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고, 해질 무렵 하늘에 비친 내 그림자조차도 낯설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속초 바닷길을 혼자 걸었던 그날은, 누구에게 말하지 않아도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을 것입니다. 많은 걸 하지 않아도,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깊이 남는 순간. 혼자였기에 더 자유롭고, 더 나다웠던 그 하루를 언제든 다시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다시 속초를 찾게 된다면, 그 길을 똑같이 걷고 싶습니다. 다른 계절일지라도, 다른 기분일지라도 그 자유로움은 그대로일 테니까요.